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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다음 소희(2023) 리뷰 [줄거리/시선/메시지]

by 지-잉 2025.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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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소희 포스터

 

〈다음 소희〉는 2016년 실제 있었던 청소년 실습생 사망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한국 사회의 노동 착취와 교육 시스템의 민낯을 정면으로 파헤칩니다. 영화는 한 고등학생 실습생의 비극적 죽음과, 그 뒤를 추적하는 형사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사회 시스템이 한 사람을 어떻게 짓밟고, 또 어떻게 외면하는지를 치밀하게 보여줍니다. 배우 배두나와 김시은의 강렬한 연기,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설정은 단순한 감정 자극이 아닌, 사회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의 힘을 증명합니다. ‘다음 소희’는 단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경고하는 이름입니다.

줄거리  착취는 어떻게 일상이 되는가

영화의 전반부는 고등학교 학생 ‘소희’(김시은 분)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특성화고에 재학 중인 그녀는 통신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하루 8시간 이상, 때로는 10시간이 넘는 업무를 수행하며 고객 응대 실적 압박을 받습니다. 상사의 감정노동 강요,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 반복되는 실적 평가… 이 모든 것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한 학생에게 아무렇지 않게 요구됩니다.

영화는 소희가 점점 지쳐가는 과정을 빠르게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복되고 무감각해지는 일상을 통해 관객에게 현장의 공기와 체감을 전달합니다. 콜 수를 채워야 퇴근할 수 있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조절해야 하며, 감정을 담지 말라고 하면서도 ‘친절하게’ 응대하라고 강요받는 모순적인 구조. 이 모든 것들이 소희의 정신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뜨립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왜 그만두지 않았을까’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방치됐을까’를 묻게 됩니다. 이 영화는 청소년 노동자의 위치를 단지 보호 대상이 아닌 사회 구조 속의 희생양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소희가 겪는 문제는 개인의 성격이나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임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형사 유진의 시선 – 사건이 아닌 사람을 보는 일

영화 후반부의 중심은 형사 유진(배두나 분)의 시점으로 옮겨갑니다. 유진은 소희의 죽음 이후, 자살로 처리된 사건의 전말에 의문을 품고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유진은 단순히 법적 책임자 찾기를 넘어서, 소희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주목합니다.

수사를 거듭할수록, 유진은 자신이 마주한 사건이 단순히 ‘비극적 사고’가 아니라, 일상이 만들어낸 사회적 범죄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영화는 유진의 혼잣말, 표정, 주저앉은 뒷모습 등을 통해 형사라는 직업을 넘은 인간적인 분노와 무력감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배두나는 이 감정을 절제된 연기로 표현하며, 유진이라는 인물을 ‘영웅’이 아니라 ‘목격자’로 완성합니다.

유진의 시선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영화는 그 답을 직접 주지 않습니다. 대신, 사건이 반복되는 현실을 보여주며, ‘다음 소희’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들이댑니다. 이로써 유진의 여정은 단지 진실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가 눈 감았던 현실을 직면하게 하는 통로로 기능합니다.

영화 이상의 메시지 – 교육, 노동, 사회가 만든 공모 구조

〈다음 소희〉는 단지 실화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 노동 시장, 청소년 보호 체계가 서로 어떻게 공모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지적합니다. 실습은 교육의 일부가 아니라,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장치로 전락했고, 그 안에서 청소년은 일방적인 책임만을 강요받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교사들의 반응입니다. 영화 속 교사들은 대부분 소극적이며, 때로는 학생이 겪는 고통을 ‘경험’이나 ‘성숙의 과정’으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이는 단지 교사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 전체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다음 소희〉는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보다, 불편함을 직시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더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연출은 절제되어 있고, 극적인 연출보다는 기록하듯 담담한 카메라워크를 유지하면서, 현실이 얼마나 차갑고 무관심한지를 강조합니다.

관객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의 목적입니다.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누군가는 이 현실을 직시하고, 바꾸기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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