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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리멤버(2022) 리뷰 [복수/스릴러/역사적 배경]

by 지-잉 2025.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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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멤버 포스터

 

〈리멤버〉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노인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개인적인 복수를 결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국형 복수 스릴러입니다. 알츠하이머라는 병과 싸우며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은, 과거 일제에 부역했던 인물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처단하면서 시간과의 싸움을 벌입니다. 영화는 단순한 폭력의 쾌감보다, 기억, 역사, 정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이성민의 강렬한 열연과 남주혁의 균형 잡힌 연기가 대비되며, 세대를 뛰어넘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와 복수 – 사라지는 기억과 꺼지지 않는 분노

〈리멤버〉는 복수극이라는 장르를 따르면서도, 주인공에게 알츠하이머라는 설정을 더함으로써 기존의 복수 영화들과 확연히 다른 색깔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필주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지만, 어린 시절 가족을 학살한 일제 부역자들의 얼굴과 이름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법으로 심판받지 않은 그들을 처단하기 위해 자신만의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직접 찾아가 죽음을 선사합니다.

이 영화의 긴장감은, 복수를 성공할 수 있을지보다도 기억이 먼저 사라질지, 복수가 먼저 완성될지의 시간 싸움에서 옵니다. 관객은 주인공이 점점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지켜보며, 그가 끝까지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을지 불안함을 안고 보게 됩니다. 이처럼 복수라는 익숙한 소재에 치매라는 설정을 접목한 방식은, 영화에 깊이를 더하고 인간의 감정과 기억의 상관관계에 대해 성찰하게 만듭니다.

또한, 이 영화는 '옳고 그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합니다.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자들을 개인이 처벌하는 것은 과연 정의일까요? 혹은 범죄일까요? 영화는 이를 직접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에게 스스로 판단하게 만드는 여지를 남깁니다. 그 결과,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도덕적 딜레마를 던지는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세대의 충돌과 연결 – 과거를 잊은 자, 기억하는 자

〈리멤버〉의 또 다른 주제는 세대 간의 인식 차이와 갈등입니다. 주인공 필주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젊은 동료 인우는 처음에는 단순히 운전만을 맡지만, 점차 상황의 심각성과 필주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되며 갈등하게 됩니다. 그는 법과 원칙을 믿는 세대이고, 필주는 역사적 책임을 직접 처단해야 한다고 믿는 인물입니다. 이들의 대립은 단순히 노인과 청년의 갈등이 아닌, 역사를 기억하려는 자와 잊으려는 자의 충돌로 상징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갈등을 단순히 흑백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인우는 필주의 과거를 들으며 점점 공감하게 되고, 필주는 인우를 통해 복수 이상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세대 간의 '이해'와 '전달'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잊혀진 역사 속에서 누군가는 분노를, 누군가는 무관심을 가지지만, 결국 공감과 전달을 통해 그 기억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인우가 필주의 복수 여정에 점점 깊숙이 휘말리며, 도덕과 정서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장면들은 관객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그 시대를 겪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내가 기억하는 역사는 온전한 것일까?” 영화는 이처럼 각자에게 맞는 정의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듭니다.

복수 그 이후 – 정의는 실현되었는가

〈리멤버〉의 결말은 전형적인 복수극의 통쾌함과는 다릅니다. 복수는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진정한 정의였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 채 마무리됩니다. 기억을 잃은 필주는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도, 무슨 일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남은 것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침묵과 허무입니다.

이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평생 간직해온 분노와 복수가, 결국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영화는 이를 통해 ‘기억’의 가치를 다시 강조합니다.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복수라는 도구를 통해 역설적으로 설명합니다.

또한, 필주의 복수를 통해 누군가가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복수는 끝났지만, 그것을 지켜본 인우를 통해 그 이야기는 전해지고, 다시 기록됩니다. 이로써 영화는 궁극적으로 '기억의 계승'이라는 주제로 귀결됩니다. 역사를 잊지 않는 것,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정의에 가까운 길임을 영화는 조용히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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