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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어쩔 수가 없다(2025) 리뷰 [도덕/정당화/시스템]

by 지-잉 2025.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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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 수가 없다 포스터

 

〈어쩔 수가 없다〉는 현대 사회 속 도덕적 딜레마와 생존의 경계를 묻는 작품입니다. 일상 속 평범한 가장이 상상하지 못할 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당신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극도의 현실성과 심리 묘사,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 절묘하게 녹아 있으며, 등장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대사 하나하나가 관객의 심장을 조용히 압박합니다. 제목처럼, 누군가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겠지만, 영화는 그 말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현실적인 소재와 강렬한 몰입감으로 지금 이 시대에 꼭 봐야 할 한국 스릴러입니다.

도덕의 붕괴 – 평범한 가장의 무너짐

영화는 주인공 '정우석'(설경구 분)이 평범한 중년 가장으로 등장하며 시작합니다. 작은 물류 회사를 운영하며 가족을 위해 묵묵히 살아가는 그에게도 한때는 꿈이 있었고, 자존심이 있었지만 현실은 그를 끊임없이 짓누릅니다. 경기 불황과 거래처 부도, 직원들의 이탈은 그의 삶을 천천히 무너뜨립니다.

그런 그 앞에 등장한 한 제안. 불법임을 알면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탈출구 같은 제안'이 우석을 유혹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한 번쯤'이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선택이 점차 더 깊은 구렁텅이로 끌고 갑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현실과 양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석의 심리를 매우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설경구는 이번 작품에서 말보다 표정과 침묵으로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관객은 그의 눈빛만으로도 불안과 공포, 자책, 분노를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 가족과의 식사 장면에서 흐르는 침묵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침묵의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이는 ‘평범함’이라는 가면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강하게 각인시킵니다.

정당화 – 선택은 언제부터 변명이 되었나

〈어쩔 수가 없다〉라는 제목은 곧 영화의 중심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석은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었고 그의 선택에는 나름의 이유와 생존 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바로 이 ‘이유 있음’과 ‘정당화’를 날카롭게 해체하려 합니다.

가령 우석이 한 선택은 주변 사람들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한 사람의 도덕적 타협이 얼마나 빠르게 주변을 침식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이솜이 연기한 기자 ‘한지윤’은 우석의 진실에 가까워지며 그를 몰아세우는데 그녀의 캐릭터는 관객에게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합니다. 지윤은 단순한 정의감이 아니라 정의와 현실 사이에서 스스로도 균열을 겪는 입체적 인물로 설정되어 있어 영화의 도덕적 질문을 더욱 복합적으로 만듭니다.

"그럴 수도 있지", "살기 위해서였잖아" 같은 말들은 영화 속 인물들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유혹처럼 다가옵니다. 하지만 감독은 그 유혹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유혹의 뿌리가 무엇인지, 그것이 결국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정당화는 결과를 바꾸지 않으며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름을 영화는 일관되게 설파합니다.

시스템의 공범 – 누가 외면하고 있었는가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인물의 범죄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적 구조를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우석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바로 ‘시스템의 방관’입니다. 금융기관, 법, 언론, 심지어 가까운 친구까지도 개인의 도덕적 파탄을 외면하거나 묵인하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조우진이 맡은 역할은 금융권 고위 임원으로, 우석에게 처음 제안을 던지는 인물입니다. 그는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그냥 선택지를 준 것뿐"이라는 식의 논리로 자신을 방어합니다. 이 캐릭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윤리를 거래의 일부로만 보는 시선을 대표합니다. 조우진은 이 역할을 소름끼칠 정도로 차분하게 연기하며, 무자비한 시스템의 얼굴 없는 폭력을 상징적으로 구현합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결국 누군가의 일탈이 아닌, 모두가 조금씩 눈을 감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들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객에게 그 판단을 넘깁니다.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다르게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남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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