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 조조 래빗(2019) 리뷰 [전쟁/풍자/성장]

by 지-잉 2025. 9. 24.
반응형

영화 조조래빗 포스터

 

〈조조 래빗〉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한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전쟁의 광기와 인간성의 본질을 풍자하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나치 독일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상상 속 친구 히틀러와 소년의 성장 이야기를 유머와 감동으로 그려냈습니다. 보기에는 장난스럽고 코미디적인 이 영화는 실은 깊은 상처와 통찰을 담고 있으며, 증오와 이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코미디와 드라마,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전쟁을 겪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전쟁을 통과한 소년 – 천진함과 광기 사이

〈조조 래빗〉의 주인공 조조는 열 살 소년입니다. 그는 독일 청소년단에 들어가기를 꿈꾸며, 나치즘을 맹목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의 방 안에는 히틀러의 사진이 걸려 있고, 상상 속 히틀러(감독 타이카 와이티티가 직접 연기)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처럼 따라다닙니다. 조조는 히틀러를 우상화하며, 전쟁은 정의롭고 영광스러운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시간이 갈수록 흔들리게 됩니다. 조조는 집 다락방에 몰래 숨어 있는 유대인 소녀 엘사를 발견하게 되고, 처음에는 그녀를 적으로 간주하며 밀고할 계획을 세우지만, 점차 대화를 나누며 그녀도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엘사는 무섭거나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하고, 고통을 겪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조조는 자신의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을 겪습니다. 그의 세계는 점점 무너지고 있으며, 상상 속 히틀러조차 점점 조조의 현실과 괴리된 존재로 변해갑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이념이 만들어낸 허상과, 그 허상 속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이의 눈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냉소적이기보다는 따뜻하고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상상의 히틀러와 진짜 어른들 – 풍자의 힘

〈조조 래빗〉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화입니다. 특히 상상 속 히틀러는 영화의 가장 도발적이고 상징적인 장치입니다. 그는 조조의 감정을 대변하고, 불안이나 분노, 죄책감을 과장된 말투와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이 캐릭터는 유머의 중심이자, 동시에 나치 이념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풍자의 도구로 기능합니다.

감독은 히틀러를 진지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설프고 유치하며, 조조의 감정 상태에 따라 변덕스러운 모습으로 그려냅니다. 이로써 관객은 히틀러라는 실존 인물의 악행보다,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의 심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조조가 점점 그를 밀어내는 과정은, 이념에서 벗어나 진짜 현실과 인간성을 마주하는 성장의 상징입니다.

한편, 조조의 어머니 로지는 진짜 어른의 역할을 합니다. 그녀는 전쟁과 나치 체제에 반대하며, 유쾌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합니다. 로지는 조조에게 이 세상이 단지 전쟁과 증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만, 조조는 그녀의 가치를 나중에야 깨닫게 됩니다. 로지의 죽음은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자, 조조가 진짜로 성장하게 되는 전환점이 됩니다.

증오를 이기는 감정 – 용서, 사랑, 공감

영화는 궁극적으로 ‘무엇이 아이를 사람으로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조조는 처음엔 누군가를 미워하는 법을 배웁니다. 나치즘은 조조에게 타인을 적대하도록 가르치고, 조국을 위해서라면 잔혹함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설득합니다. 하지만 조조는 엘사를 만나고, 어머니를 잃고, 전쟁이 끝난 뒤에야 깨닫게 됩니다. 진짜 용기는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엘사와 조조의 관계는 점차 따뜻한 유대감으로 변합니다. 엘사는 조조에게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무지한 것이었는지를 가르쳐주며, 조조는 엘사에게 희망이 되어줍니다. 이 둘의 감정은 로맨스라기보다는 깊은 공감과 연대의 정서로 그려지며, 마지막 장면에서의 춤은 모든 말보다도 강한 감정의 결말을 보여줍니다.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이 무너진 뒤, 조조와 엘사는 함께 춤을 춥니다. 그것은 비극이 끝났음을 알리는 축제가 아니라, 슬픔과 고통을 지나온 자들이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자유’의 몸짓입니다. 영화는 증오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하는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조용히 말해줍니다.

〈조조 래빗〉은 단지 반전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아이의 성장, 사랑의 본질,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을 유쾌하고 진중하게 담아낸 수작입니다. 역사적 맥락을 날카롭게 비틀면서도, 결국엔 감정의 힘으로 관객을 감동시키는 이 영화는 오랫동안 회자될 작품이 될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