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복귀작이자,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사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죽음을 넘어선 세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주인공 소년은 상실, 성장, 용서의 과정을 거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전쟁, 가족의 해체, 도피, 책임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환상성과 아름다운 작화,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관객 각자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삶의 본질에 대한 시적 성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줄거리 – 상실과 환상, 그 사이에서 길을 잃고 찾다
영화는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소년 ‘마히토’는 화재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함께 시골 외가로 이주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계모와의 어색한 동거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마음을 닫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딴 저택의 근처에서 인간처럼 말하는 ‘왜가리’를 만나고, 그를 따라 불가사의한 건물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의 무대는 현실에서 환상의 세계로 전환됩니다. 이 세계는 하야오 특유의 생명력 넘치는 상상으로 가득 찬 다중 세계 구조로, 죽은 사람들과 살아 있는 존재가 공존하며, ‘질서’와 ‘창조’의 균형이 깨어진 공간입니다.
마히토는 이 세계에서 어머니와 닮은 인물을 만나고, 각종 환상적 존재들과 교류하며 점차 감정의 균열과 상처를 직면하게 됩니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무너진 이 세계에서,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현재를 감당할 것인가. 이는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자신과 마주하는 내면의 여정이 됩니다.
영화는 설명보다 직관과 상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객은 마히토가 겪는 혼란과 성장의 과정을 따라가며 스스로 해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는 하야오 감독의 전작과는 또 다른 깊이를 선사하며, 단순한 환상동화 이상의 울림을 남깁니다.
인물 – ‘마히토’를 통해 하야오가 말하는 인간
주인공 마히토는 전쟁으로 어머니를 잃은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소년입니다. 그는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세상과 담을 쌓은 인물로 등장하지만, 왜가리를 따라 환상의 세계를 탐험하며 내면의 고통과 용서를 향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마히토는 단순히 성장하는 소년이 아닌, 상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의 초상입니다.
‘왜가리’는 초기엔 의심스럽고 위협적인 존재로 묘사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역시 자신의 고통과 과거를 짊어진 존재임이 드러납니다. 그는 일종의 ‘가이드’이자 ‘경계의 존재’로, 마히토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왜가리는 죽음과 생, 이승과 저승 사이의 존재로 기능하며, 세계를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합니다.
또한 영화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대부분은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예를 들어, 마히토가 만나는 ‘노파들’은 보호자이자 공동체의 상징이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해석하는 존재들입니다. 계모 역시 단선적인 인물이 아니라, 어른의 책임과 사랑,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감춘 채 살아가는 복합적인 캐릭터로 표현됩니다.
결국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인물들은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는 존재들이며, 관객 역시 그들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총평 – “너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잔향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설명보다 느낌과 사유로 이해해야 하는 영화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질문은 남기되, 정답은 제시하지 않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는 어쩌면 관객 각자가 자신의 경험과 인생을 바탕으로 스스로 답을 찾길 바란다는, 그의 마지막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
영상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수채화 같은 배경, 생동감 있는 캐릭터 디자인, 현실과 환상이 맞닿는 공간 연출은 스크린을 한 폭의 그림처럼 만듭니다. 음악은 조용히 배경을 채우며, 이야기의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킵니다. 대사는 절제되어 있고, 많은 감정은 침묵과 시선으로 전달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영화가 단순히 개인의 성장 서사를 넘어서 인류 전체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는 점입니다. 전쟁과 폭력, 자연의 질서, 상실과 창조 등 다양한 테마들이 얽혀 있으며, 이는 하야오 감독이 생애 동안 고민해 온 철학적 질문들입니다. 그리고 마히토는 그 질문을 처음으로 온몸으로 마주한 인물입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깊은 사유와 정서적 울림을 원한다면, 이 영화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관람 후 당신도 아마 이 질문을 되뇌게 될 것입니다.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