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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레슬러(2018) 리뷰 [줄거리/인물/총평]

by 지-잉 2025.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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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슬러 포스터

 

〈레슬러〉는 스포츠라는 소재를 통해 가족과 성장, 그리고 세대 간의 소통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영화입니다. 은퇴한 국가대표 레슬러와 그의 아들이 펼치는 일상 속 갈등과 이해, 그리고 사랑은 단순한 스포츠 드라마를 넘어 한국 가족영화 특유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유해진 특유의 인간미 있는 연기와 김민재의 섬세한 감정선이 맞물려, 작은 웃음과 깊은 울림을 동시에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가족 내 감정의 틈과 소통의 부재,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정갈하게 그려냅니다.

줄거리 – 아버지와 아들의 거리, 삶의 한복판에서 좁혀지다

영화는 은퇴한 레슬러 '귀보'(유해진 분)가 도심에서 작은 체육관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과거에는 국가대표로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운동보다는 아들 성웅(김민재 분)을 키우는 데 전념하며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레슬러로서의 꿈’을 아들이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성웅은 이미 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접고 공무원을 준비하는 전혀 다른 삶의 궤도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 둘의 생각 차이는 사소한 갈등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점차 서로의 삶에 깊게 관여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더 이상 ‘가족이니까’라는 이유만으로 이해될 수 없는 상황들이 반복됩니다. 귀보는 아버지로서, 동시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기 삶의 의미를 되짚고, 성웅은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릅니다.

여기에 성웅의 친구이자 귀보와 묘한 관계를 맺게 되는 ‘가영’(이성경 분)이 등장하면서,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가영은 성웅에게는 친구이지만, 귀보에게는 이성적인 호감을 갖게 되는 상대이기도 해, 세 사람 사이의 감정선이 매우 미묘하게 얽히는 전개가 펼쳐집니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 속에서도 영화는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결국 영화는 가족 간의 갈등이 일방적인 이해가 아닌, 시간과 대화, 그리고 각자의 삶을 존중할 때 비로소 해소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인물 –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닮은 두 사람

〈레슬러〉의 중심에는 단연 귀보와 성웅, 부자 관계가 있습니다. 귀보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여전히 과거의 방식과 생각에 머물러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아들이 레슬링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패한 꿈을 대물림하려는 모습에서 부모 세대의 전형적인 기대와 고집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보는 악의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크고, 진심으로 그의 성공을 바라고 있지만, 표현 방식이 서툴 뿐입니다. 유해진은 이 복합적인 인물을 특유의 인간적인 매력으로 소화하며, 관객이 그를 미워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반면, 성웅은 청년 세대의 현실과 고민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면서도,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는 데 대한 부담감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충돌하고, 또 좌절하게 됩니다. 김민재는 이 캐릭터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청년층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여기에 이성경이 연기한 가영은 단순한 삼각관계의 매개체가 아니라, 가족 외부에서 보는 관찰자적 시선을 담당합니다. 그녀는 때로는 귀보에게 위안이 되고, 때로는 성웅에게 자극이 되는 존재로서, 두 인물의 변화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결국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성장합니다. 귀보는 아들이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성웅은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의 변화는 화려하거나 급진적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고 깊은 울림을 줍니다.

총평 – 격투가 아닌 삶을 위한 화해

〈레슬러〉는 레슬링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 싸우는 것은 인물들의 감정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갈등,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 세대 차이에서 오는 소통의 부재. 이 모든 것이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이 작품의 진짜 미덕은 ‘이해’라는 키워드를 유쾌하게 풀어낸다는 점입니다. 많은 가족 드라마가 울음과 고통, 눈물로 표현된다면, 〈레슬러〉는 그보다 한 발 뒤에서 웃음과 침묵 사이에서 감정을 건드립니다. 감정의 격돌은 있지만, 그 끝에는 폭력이나 파국이 아닌 화해와 존중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따뜻한 영화입니다.

또한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진가는 이 영화에서 특히 빛을 발합니다. 그는 과하지 않게, 부담스럽지 않게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김민재는 젊은 세대의 고뇌를 대사보다 표정으로 전합니다. 이 둘의 조화는 영화 전반에 걸쳐 자연스러움을 유지시킵니다.

〈레슬러〉는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만큼은, 반드시 해야 한다.”

이 평범한 진리를 따뜻하게 담아낸 이 영화는, 삶의 한복판에서 상처받고, 성장하고, 용서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레슬링 같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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