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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발레리나(2023) 리뷰 [줄거리/인물/총평]

by 지-잉 2025.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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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발레리나 포스터

 

〈발레리나〉는 복수라는 익숙한 플롯 안에 감정의 밀도를 농축시켜 폭발시키는 스타일리시 액션 영화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이 작품은 절제된 대사, 감각적인 영상미, 강렬한 액션으로 주목받았으며, 전종서, 김지훈, 박유림의 연기 시너지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단순한 폭력의 카타르시스가 아닌, 사랑과 상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의 서사를 통해 복수를 그려낸 이 영화는 기존 한국 액션 영화에서 보기 힘든 연출과 분위기를 구현해냈습니다.

줄거리 – 죽음을 지켜본 자의 복수

극은 오프닝부터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로 관객을 끌어들입니다. 주인공 옥주(전종서 분)는 특수요원 출신의 여성으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유일하게 소중했던 친구 민희(박유림 분)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 살아갑니다. 민희는 자신이 처한 위험한 상황을 옥주에게 미리 알렸지만, 옥주는 너무 늦게 도착했고, 민희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민희가 남긴 유서와 함께, 옥주는 그녀가 겪었던 고통과 그 중심에 있는 남자 최프로(김지훈 분)에 대해 알게 됩니다. 최프로는 권력과 자본을 이용해 여성들을 유린하는 인물로, 민희 역시 그의 손에 희생된 것입니다. 옥주는 민희가 발레리나가 되길 꿈꿨던 그 아름다웠던 이상을 되새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준비합니다.

이후 영화는 옥주가 단서 하나하나를 추적하며 최프로와 그의 조직에 접근하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불법 영상물, 사적인 접대, 권력자들과의 연결 고리 등을 끊어내는 과정 속에서, 옥주는 감정적으로는 흔들리지만 행동에서는 단호하고 정확합니다. 영화는 피 튀기는 액션과 슬로모션 장면을 통해 복수의 감정선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면서도, 이 복수가 정의인지, 아니면 또 다른 고통의 반복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옥주는 민희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최프로를 처단함으로써 복수를 완수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해피엔딩을 택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민희가 남긴 공허함과 더불어 스스로에게 남긴 질문 속에서 마지막까지 고요하게 서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의 여운입니다.

인물 – 말보다 몸으로 감정을 말하다

〈발레리나〉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 중 하나는 인물들이 ‘말’보다 ‘몸’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 옥주는 복수의 과정을 통해 변화하거나 흔들리기보다는, 내면의 고통을 극도로 억제한 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냅니다. 전종서는 이 복잡한 감정을 절제된 표정과 동작, 그리고 몸짓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합니다. 대사가 많지 않음에도 그녀의 감정은 화면 너머로 진하게 전해집니다.

옥주의 절친이자 복수의 이유가 된 민희는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적 축입니다. 박유림은 연약하지만 동시에 용기를 낼 줄 아는 캐릭터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고립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녀의 존재는 관객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기며, 영화의 정당성과 서사를 탄탄하게 지탱합니다.

반면 최프로는 이 영화의 전형적인 악역입니다. 김지훈은 이 캐릭터를 단순한 폭군으로 연기하기보다는, 차분하지만 냉소적인 어조와 눈빛으로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더 섬뜩한 인상을 줍니다. 그의 말투와 눈빛 하나하나가 옥주의 분노를 더욱 정당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 권력과 성의 왜곡된 결합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이 외에도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많지 않지만, 인물 간의 관계가 복잡하지 않기에 관객은 옥주의 복수에 더욱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출한 인물 구성에도 불구하고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총평 – 복수는 감정이다, 그리고 스타일이다

〈발레리나〉는 흔히 말하는 ‘복수극’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얼마나 감각적이고 밀도 있게 풀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단지 누군가를 처단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실과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한 여자의 심리 여정을 따라가는 데 집중합니다. 때문에 관객은 옥주의 복수를 단순히 ‘정당한 폭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무게를 함께 느끼게 됩니다.

연출 면에서는 강렬한 조명, 색보정, 음악의 조화가 매우 뛰어나며, 특히 피와 총성, 어둠 속 액션이 만들어내는 ‘감각적 질감’은 영화의 분위기를 견고히 지탱합니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서 공개된 만큼, 특정 관객층에 맞춘 서사와 스타일이 강조되었다는 인상도 있지만, 그만큼 독립영화적인 감성과 상업적 연출의 접점을 잘 잡아냈다는 평가도 가능합니다.

다만 일부 관객에게는 다소 짧은 러닝타임과 제한된 배경, 단조로운 인물 구성이 아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모든 제한 속에서도 ‘감정’이라는 한 가지 축에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합니다.

〈발레리나〉는 ‘왜 복수를 하는가’보다 ‘그 감정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묻는 작품입니다. 감정의 무게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는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이 아닌 감정으로 완성된 복수극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 여운은 화면이 꺼진 뒤에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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