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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얼굴(2025) 리뷰 [줄거리/인물/총평]

by 지-잉 2025.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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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굴 포스터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2025)은 인간의 내면, 가족 관계, 사회적 정체성을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심리 드라마입니다.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등 탄탄한 캐스팅이 이끄는 이 작품은 한 남자의 불완전한 기억과 그로 인해 드러나는 가족의 비밀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는 자아의 초상을 그립니다. 단순한 미스터리나 가족극을 넘어선 이 영화는, 정체성의 균열이 시작되는 지점을 포착하며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라는 존재는 정말 나의 것일까?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감정들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을까? 연상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현실에 뿌리내린 심리적 불안을 철저히 해부하며, 관객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줄거리 – 잃어버린 조각, 되찾고 싶은 이름

〈얼굴〉은 ‘임동환’(박정민)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과거의 기억이 단절된 채 살아가는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알고 있던 가족 관계와 완전히 다른 단서를 마주하게 됩니다.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던 인물, 낯선 장소, 그리고 반복되는 꿈.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착각인지, 혹은 억눌린 진실의 파편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동환은 점점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게 됩니다.

영화는 동환이 기억을 좇아가며 발견하는 여러 사람들과 사건들을 통해, 그의 과거가 의도적으로 지워졌다는 암시를 던집니다. ‘임영규’(권해효)라는 아버지의 존재, ‘정영희’(신현빈)와의 관계, 그리고 수면 아래 감춰진 어떤 폭력과 선택들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스토리는 다소 느린 호흡으로 전개되지만, 그 느림 속에서 관객은 동환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며 진실에 다가갑니다. 감정의 파동과 기억의 왜곡은 인물의 얼굴과 표정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며, 영화는 ‘과거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를 체험하게 만듭니다.

인물 – 침묵 속에 감춰진 진실의 얼굴들

〈얼굴〉의 인물들은 모두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중심에 있는 임동환은 기억을 잃은 피해자이자, 어떤 면에서는 공범일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박정민은 혼란과 불안을 외면하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의 몰입을 이끕니다.

임영규 역의 권해효는 복잡한 아버지 캐릭터를 맡아, 사랑과 억압, 책임과 외면 사이의 갈등을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그의 목소리 톤, 시선의 회피, 대사 하나하나가 이 인물이 감춰온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합니다.

신현빈이 연기한 정영희는 침묵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합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지만, 쉽게 말하지 않으며, 대신 미세한 표정과 거리감 있는 태도로 서사를 이끕니다. 마치 관객에게 "직접 알아내 보라"는 듯한 태도는 영화의 미스터리 구조를 더욱 강화합니다.

이외에도 한지현, 임성재 등 조연진 역시 감정이 응축된 연기를 통해 ‘얼굴’이라는 테마에 걸맞은 다층적인 감정선을 구축해냅니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을 내려놓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총평 – 불편하게 아름다운 심리극

〈얼굴〉은 상업적인 재미보다는, 심리적 체험과 질문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연상호 감독은 단순히 현실 비판이나 감정 소비를 유도하지 않고, 관객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서사를 택합니다.

영화의 미장센과 조명, 음악은 전반적으로 절제되어 있으며, 거울, 사진, 창문 같은 오브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시각적으로 구조화합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관객에게 감정적인 폭발보다는 내면의 긴장을 유도하는 효과를 줍니다.

다만, 이야기의 호흡이 느리고 복선이 간접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일반 관객층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친절함이 오히려 이 영화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얼굴〉은 쉽게 읽히는 영화가 아닌, 스스로 해석해가야 할 텍스트에 가깝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거울을 마주하는 순간, 관객도 자신의 ‘얼굴’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영화는 질문을 던지고, 해답은 남깁니다. 그래서 더 오래, 더 깊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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