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킬링 로맨스〉는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페미니즘 블랙코미디 장르의 작품으로, 화려한 색감과 과장된 연출 속에 숨겨진 사회적 풍자와 여성의 자각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하늬, 이선균, 공명이 주연을 맡았고, 각각의 캐릭터가 전형적인 구조 속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상징성을 만들어내며 관객에게 웃음과 불편함, 그리고 통쾌함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단순히 ‘코미디’로 분류하기 어려울 만큼 이 영화는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자기 회복 서사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수작입니다.
줄거리 – 통제에서 자각으로, ‘여래’의 탈출극
영화는 톱스타 여래(이하늬)가 연기력 논란으로 연예계를 은퇴하고 외딴 섬 ‘코코넛 섬’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만난 국제적인 사업가 조나단 나(이선균)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되지만, 이 로맨틱한 서사는 곧 억압적이고 감금에 가까운 생활로 전환됩니다. 조나단은 여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일상, 외모, 행동, 감정까지 철저히 통제하고, 그녀는 점차 존재감을 상실한 인형처럼 살아갑니다.
고립된 섬에서의 삶은 마치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된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축소판과도 같습니다. 여래는 ‘이해심 많은 남편’이라는 포장 아래에서 사실상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으며,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인물이 바로 고등학생 범우(공명)입니다. 우연히 여래의 삶을 들여다본 범우는 그녀를 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두 사람은 무모하지만 용기 있는 ‘조나단 제거 작전’을 실행에 옮기려 합니다.
인물 – 고정관념을 비트는 세 캐릭터의 역동성
여래 (이하늬)
여래는 영화 속에서 가장 복합적인 인물입니다. 처음엔 수동적인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그녀의 내면은 점차 깨어납니다. 이하늬는 특유의 에너지와 탄탄한 표현력으로 ‘과장된 연기’의 본질을 제대로 소화해냈으며, 이는 캐릭터 자체가 가진 이질적인 상황과 완벽하게 어우러집니다.
조나단 나 (이선균)
조나단은 고전적인 폭군 남편의 전형을 따라가면서도, 그 모습이 현대 사회 속 ‘미소 지은 가해자’의 모습과 겹칩니다. 이선균은 이 인물을 매우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폭력성과 유머를 동시에 표현해냅니다. 그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 남성 권력의 은유로 기능합니다.
범우 (공명)
범우는 영화 내내 ‘선의의 조력자’로 기능하지만, 그의 존재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래를 도우면서도 자신의 용기를 시험받는 인물이며, 순수한 정의감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점차 그 역시 여래의 감정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총평 – 익숙한 구조의 낯선 해체
〈킬링 로맨스〉는 장르적 실험과 사회적 메시지가 공존하는 보기 드문 영화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블랙코미디와 풍자극이지만, 그 아래에는 여성의 삶, 권력 관계, 자기 회복에 대한 깊은 메시지가 자리합니다. 이 영화는 여성을 ‘구원받는 대상’이 아닌, 구조를 해체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로 그리고 있으며, 이는 한국 상업 영화에서 흔치 않은 시도입니다.
감독 이원석은 철저히 과장된 연출과 미장센, 극단적인 색채 활용을 통해 영화적 리얼리즘 대신 우화적 현실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일부 관객에게는 낯설고 불편할 수 있으나, 바로 그 불편함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더 강하게 각인시킵니다.
결과적으로 〈킬링 로맨스〉는 장르의 관습을 비틀고, 서사의 전형을 부수며, 여성 중심 서사를 유쾌하고도 강렬하게 제시한 수작입니다. 웃음 속에 사회적 질문을 품고 있고, 과장된 장면 속에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가볍게 시작했지만, 결코 가볍게 끝나지 않는 영화입니다.